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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7 03:23

세설원 /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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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원 / 박재연

소화되지 못한 감정은 어디에 쌓일까

너무 슬퍼서 하루를 꼬박 울었더니 다음날 창자가 다 녹았다는 사람이 있다

오뉴월에 내리는 서리가 싫어서 마음을 남쪽으로 옮긴다 맛없는 감정이 싫어서 맛있는 감정을 찾아간다

안성 지방에 유기를 주문하듯 담양 세설원에 맞춤 감정을 주문한다

하늘을 싹 쓸어가는 청운동 구름 빗자루, 불구의 척추를 일으켜 세우는 반딧불이 떼의 군무, 야간 비행운 꼬리를 이어 달리는 소설가의 담배 연기, 시인이 건네주는 까마귀 베게

느티나무 정수리에서 떠오른 달은

시계방향으로 돌다 세 시쯤

느티나무를 벗어난다

한이 맺힌다는 천추는 어디일까

신가하게 감정은 음식과 같다

마당가의 백합들 모두 발효 항아리 틈새로 뛰어들고 향기를 입힌 김선숙 약선요리를 먹으니 아랫배가 끓고 한바탕 설사가 나온다 저희끼리 변비로 똘똘 뭉쳤던 분노 증오 미움 공포가 쏟아진다

한을 밀어내자 춤을 추고 싶다

맞춤 감정을 입고 춤을 춘다

가엾고 아름다운 천추를 위하여

무용이 아닌 무예

기립 박수와 커튼콜이 오르고

나는 이제 가벼워졌다

박재연, 『텔레파시폰의 시간』, 한국문연, 2018 pp.98~99.

[출처] 박재연 시인의 시 '세설원'|작성자 주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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